2009년 4월 28일 화요일

고려 인삼 블로그를 시작하며...















1. 고려 인삼과의 첫 만남.

아주 오래전 아마도 내가 6-7살 때의 까마득한 어린시절의 기억으로 생각된다.

초등학교를 입학 할 무렵 서해안 작은마을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자라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득한 유년시절의 흙 강아지였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머리는 빡빡으로 깍아 놓고 검정 고무신에 가을부터 늦은 봄까지 코흘리게로 마을을 쏘다니는 모습이 흡사 강아지와 다름없었다.


어린시절

시골에서의 성장 기억은 많은 추억을 남겨 주었으며, 돌이켜보면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이 뚜렸했던 그 시절.

봄이면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진달래,개나리등 이름 모를 수많은 꽃들과 고사리,달래,냉이등의 향긋한 봄 나물들.

여름이면 더위를 식히려 동네어귀의 서해바다 갯벌로 나가 수영도 하고 진흙 머드팩도 하고 때론 저수지에서 수박,참외등을서리해 놓고 수영을 즐기며 맛나게 먹던 그시절.

가을은 여지없이 시골답게 갖가지 곡식의 추수를 하여 먹을 것이 많았던 가난했지만 풍족했던 그시절

겨울은 변함없이 맹추위를 안겨다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추운겨울을 이겨냈는지 의문스럽게 여겨지기도한다.

지금으로부터 약35년전 겨울이면 서해바다에 집채보다도 큰 어름 덩어리들이 바닷물의 밀물에 의하여 둥둥떠다니곤 하였다.

난 그시절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에 나가 그 커다란 어름덩어리들을 타고 다니며 노는 놀이를 매우 좋아 했었다.

나의 키에 두세배 정도하는 커다란 대나무로 노를 삼아 어름덩어리를 운전하곤 하였다. 가끔씩은 어름사이 (당시의 기억으로는 성애장이라고 하였음) 에 동태,고등어,숭어등 바닷고기가 산채로 냉동되어 얼음속에 있기도하여 어름을 깨고 할머니에게 가져

다 드려서 맛난 요리를 먹기도 하였다. 지금생각해 보면 매우 위험한 놀이였지만 바다에서 늘 수영하고 놀며 자란탓에 바다가

무서운 줄 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바다는 망둥어,바지락,굴,맛살,게,숭어등 다양한 어패류와 해산물을 공급해

주었으며 아마도 커다란 운동장이라 느끼며 자란것 같다.

할아버지의 집 뒤에는 커다란 산이 자리잡고 있고 앞 마당을 지나면 남향으로 조그만 저수지와 열마지기정도하는 논이 있고

그 앞에는 바다물의 침범을 막는 방파제가 있고, 바다로 둘러 싸여 있는 서해안 육지의 마지막 끝부분이다. 이 집은 조선시대에

고을 원님인 사또가 살던 집으로 오래된 노송과 기와집으로 제법 방도 많은 커다란 집이였다.

집 뒤에는 커다란 산이 있으며 옛날 오랑캐를 막기위해 산등성이로 성이 쌓여 있었으며 산 정상에는 봉화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산 정상에오르면 서해바다 대부도,제부도등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 오는 전망이 꽤나 좋은 높은 산이다.

마을은 한 100여 가구남짓 살았던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마을에는 인삼 덕장을 재배하시는 분들이 꽤나 많이 계셨던것으로 기억한다.

늘 그곳을 지나다니고 노닐곤 하였으며 햇볓을 막기 위하여 까만 차광막으로 둘러쌓아 인삼을 재배하던 인삼 덕장이 많았다.

아마도 이것이 나와 고려 인삼과의 인연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1장 고려 인삼은 이것으로 서론을 시작하고 2장은 산삼을 가지고 노닐던 어린시절로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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